
“진폐환자” 는말한다.
석탄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발전의 초석 이된 석탄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가 잘살게 될수 있었던 원동력은 석탄이다 벌목을 해서 땔감으로 쓰고 산에는 나무가 없었던 시절 초대 이승만대통령이 1949년 4월에 영암선(영주~철암86.4km)을 건설하여 전국에 무연탄 에너지를 공급 하고저 순수 우리기술로 시작했다.
물론 6.25전쟁이 포함되어 공사가 늦어지는 시행 착오도 경험 했다.
그당시 삼척지역 무연탄 장성광업소(삼척군) 도계광업소에서 생산한 석탄을 묵호항에서 배로 인천항에 하역 하여 다시열차로 영월화력발전소에 도착하여 전기를 공급했다.
삥~돌아가야 했던시절 장성과 영월은 바로 옆인데도....
이러한 낙후된 삶에 대통령이 직접나섰고 6.25전쟁을 치른후에 1955년12월30일 준공되었고 영암선이 1956년1월16일 개통되어 전국적으로 난방 연료로 거듭나게 되었다 수도권 반입이1/10로 개선되었다 따라서 동해안 해산물이 전국으로 유통되었다.
도리켜 보면 이렇게나마 석탄을 사용 할수 있었던 것도 아래에 서술한 일본사람들이 닦아놓은
기술을 그냥 사용한 것이다.
나라를 운영함에는 100년 대계를 생각해야 한다.
일본 식민지시절
1937년도에 일본인들이 삼척지역 탄광개발권을 취하고 무연탄을 캐면서 일본으로 수송해야 하는데 기발한 아이디어 로 설계하여 1939년도에 일본정부는 묵호에서 (나한정~흥전역까지는 스위치백 (switchk) )심포리 까지 철길을 건설하고 통리 와 심포리 사이는 인크라인(incline)을 설치하여 석탄을 화차에 싣고 1량씩 통리에서 심포리역으로 내려서 묵호항에서 일본으로 가저갔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찌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난다.
영암선 이개통후
묵호역에서 심포리 까지 열차로 와서1.1km 경사23~25도 걸어서 통리역에 도착열차를 타고 가고싶은 목적지 갈수 있었다.
이러한 불편을 박정희 대통령이 군정시절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시절1963년도에 태백선과통리 심포역 사이를 개통하여 완전한 탈바꿈을 했다.
이렇게 무연탄이 중요했고 국가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이다 하기에 두분 대통령께서 역량을 쏟아 부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광부들에게 고생한다고 겨울 방한복까지 매년 선물해 줬다.
석탄 공급이 전국적으로 원할해 지면서 구공탄 늘어나면서 서민들 의 난방연료 와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세월의변화 에 따라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전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1974년 또 1978~1980년 두번에 걸처 석유파동이 있었다.
그때부터 석탄을 생산하는 광업소에는“목표달성”“책임량달성”“생산증대”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한달 30일 공휴1~2일쉬고 3교대로 수천 미터 지하막장에서 석탄가루와 습도 열기에 땀으로 젖은 작업복을 짜서 입고 작업했다.
이렇게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산업역군이다 그 당시 정부에서도“산업전사”라고 칭호해주고 짐승같이 일을 시켰다.
물론 내가살고 내가족 을 부양하기 위함이었으나 잘사는 나라 경재강국이 되었으면 숨쉬기도어려운“진폐증”이라는 불치병 에 걸린 진페환자들 전국적으로 4.500여명 계시는데 병든 산업전사사들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줘야하는 책임감을 정부에서 저야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