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함백광업소’는 전쟁터였다
성희직
2025년, 제9회 ‘함백광업소 순직광부 추모제’를 연
신동읍 자미갱 추모공원엔 굵은 눈발이 흩날렸다.
1979년 4월 14일 아침에 터진 화약폭발사고는
갱구(坑口) 앞에서 인차를 타고 입항을 기다리던
광부 26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다
다이너마이트 51kg이 폭발한 엄청난 위력에
자미갱 앞은 한순간 참혹한 전쟁터로 변하였다
살점과 뼈가 사방으로 튀고 온전한 시신이 없었다
당시까지 대한민국 최대 탄광 사고였다
그해 10월 27일 문경시 ‘은성광업소’ 갱내화재로
44명이 떼죽음하여 불명예 기록은 또 바뀌었지만
‘석탄공사’에서 연이어 터진 대형 참사임에도
국회에서 특별조사 활동을 했단 기록은 없고
한국일보는 “鑛山서 火藥폭발 28명 死亡”
이런 제목으로 크게 보도하였지만 오보(誤報)였다
나라도 언론도 하찮게 여긴 산업 전사들의 목숨값
1993년 폐광까지 1,700만 톤 석탄을 캐느라
175명이 사망하고 중경상도 1,489명이나 발생했다
광부 한 명의 목숨을 석탄 10만 톤과 바꾼 셈이다
함백탄광 폭발사고는 어느덧 46년이 되었건만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해 너무도 원통한 영혼들
지금껏 구천을 떠돌다 함박눈으로 찾아온 걸까!
‘춘래불사춘(春來不死春)’
남쪽엔 벚꽃도 벌써 졌건만 자미갱 앞은 아직도 겨울.